아드리아해의 해풍이 닿는 해안에 자리한 스플리트 중심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이라는 독특한 도시 구조가 남아 있습니다. 이 공간은 단순히 고대 유적이 아니라, 한 황제의 은퇴 생활을 위해 지어진 건축물이 도시 전체의 뼈대가 되어 오늘까지 살아 있는 형태로 이어진 예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도시와 사람들은 궁전을 재해석해 왔고, 그 결과 스플리트는 거대한 유적 내부에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보기 드문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 글은 궁전의 기원, 건축적 실체, 도시 변화, 관람 동선, 보존 정책 등을 정리하며, 궁전이 왜 단순한 역사적 설명에 그치지 않고 현재성을 유지하는지 깊이 있게 다뤄보려 합니다.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흔적이 한 장소에 어떻게 쌓이는지 살펴보면, 스플리트라는 도시가 가진 매력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건립 배경과 황제의 은퇴 전략

이미지 출처: 크로아티아 관광청 / Split City Museum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의 분열과 위기 속에서 즉위했으나, 강한 개혁과 통치 구조 정비를 통해 혼란을 수습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국 내에서 드문 결정을 내렸습니다. 바로 은퇴를 전제로 한 궁전 건설입니다.
황제가 스스로 물러나기 위해 대규모 건축을 계획한 사례는 로마 역사 전체에서도 특이합니다.
그가 선택한 지역은 고향인 달마티아 지방 근처의 해안이었고, 이곳은 당시 로마 군사·행정의 주변부였지만 자연환경이 뛰어났습니다. 굳건한 암석지대와 접근성 높은 해안은 요새형 궁전을 세우기에 최적이었고, 특히 안전과 개인적 휴식을 동시에 충족시켰습니다.
결국 295년경 착공된 궁전은 305년 황제의 은퇴 시점과 맞물려 완성되었고, 건축 목적은 사적 거처와 군사적 방어 기능의 결합이었습니다. 황제는 이곳에서 정원 관리와 생활을 즐기며 “정치적 퇴장”을 실천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권력에서 물러난 황제의 삶이라는 점에서 그 건립 배경은 더욱 독특한 의미를 갖습니다.
궁전의 건축적 구조와 공간적 성격

이미지 출처: 스플리트 고고학 박물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약 215m × 180m의 직사각형 구조로, 로마 군영의 전통적 배치를 따라 네 모서리에 탑을 두고 사방 출입문을 배치했습니다. 이 구조는 단순한 사적 공간이 아니라, 군사 요새와 황제의 거처가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형태입니다.
궁전 내부의 핵심 공간은 중앙의 페리스틸(Peristyle)입니다. 기둥들이 둘러싼 중정은 의식과 행사, 권력의 표식이 깃든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고대 로마 후기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돔, 아치, 코린트식 기둥 등이 조화를 이루며, 장식 요소는 황제의 위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남쪽은 바다와 직접 맞닿아 있으며, 황제가 해안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습니다. 이는 로마 건축에서 보기 드문 형태로, 궁전의 군사 시설이 주로 북쪽과 동·서쪽에 집중되면서 남쪽은 완전히 사저 중심 공간으로 남았습니다.
지하 저장고와 기반 구조는 오늘날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당시 건축의 공학적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지하 구조 보존도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힙니다.
중세와 근대로의 전환: 궁전이 도시가 된 과정

이미지 출처: Split Historical Archive
7세기경 살로나 지역이 외부 민족의 공격으로 붕괴되자, 주민들은 방어력이 강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는 궁전이 단순히 유적으로 남지 않고 도시로 재발명되는 첫 전환점이었습니다.
주민들은 궁전 내부의 회랑, 통로, 기둥 사이에 목재 구조물을 붙이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당·상점·주거시설이 궁전 잔해 위에 겹겹이 쌓였습니다. 이러한 변형은 계획된 도시 형성이 아니라 ‘필요를 기반으로 한 자연적 생성’이었기에 구조가 복잡하면서도 독특한 도시 미감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특히 황제의 영묘는 성 도미니우스 성당으로 재해석되며 중세 종교 건축물의 중심이 되었고, 로마 건축과 기독교 전통이 만나는 상징적 장소로 남았습니다.
그리하여 궁전은 더 이상 황제의 공간이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 도시로 변했고, 결국 스플리트라는 도시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약 수천 명이 유적 내부에서 실제로 살고 있다는 점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사례입니다. 유적과 일상이 공존하는 도시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요 관람 구역과 동선 제안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탐방할 때는 단순히 유명 포인트만 보는 것보다 공간의 성격을 이해하며 걸을 때 훨씬 풍부한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탐방객이 가장 많이 찾는 주요 구역과 추천 동선입니다.
1. 황금문(Golden Gate)
북쪽 정문으로, 황제의 공식 입장로에 해당하는 의미 있는 문입니다. 지금도 크고 웅장하며 스플리트 구시가지 진입의 상징처럼 남아 있습니다. 궁전의 격식을 보여주는 요소입니다.
2. 페리스틸(Peristyle)
궁전 중심부 광장으로, 고대와 현대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입니다. 기둥의 비율과 구조는 로마 후기 건축 기술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줍니다.
3. 지하 저장고(Cellar)
궁전 보존 상태 중 가장 완벽한 공간으로 평가됩니다. 당시 바다와 연결된 흔적까지 남아 있으며, 구조를 통해 황제의 사저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4. 성 도미니우스 성당
원래는 황제의 영묘였으나 중세에 교회로 바뀌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사용 중인 성당 중 하나로 여겨지며, 종탑에 오르면 스플리트 전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5. 리바(Riva) 산책로
궁전 남쪽 해안가에는 현대적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고대 석벽과 바다의 조화가 인상적입니다.
추천 동선은 황금문 → 페리스틸 → 지하실 → 성당 → 리바 순으로 이어가면 구조와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대와 현대가 연결되는 느낌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순서입니다.

궁전이 살아남은 이유: 보존과 도시 정책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이 오늘까지 살아남은 것은 단순한 운이 아닙니다.
첫째, 스플리트 주민들이 궁전을 ‘자신들의 생활 공간’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비어 있는 유적은 풍화되지만, 사용되는 건물은 형태가 유지됩니다. 사람들의 생활이 곧 보존 행위였습니다.
둘째, 중세와 근대에 걸쳐 진행된 개조가 비파괴적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기존 구조를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남은 구조물에 맞춰 건물을 덧붙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궁전의 원형 요소가 의외로 많이 남게 된 중요한 요인입니다.
셋째, 20세기 이후 보존 정책은 “원형 복원”보다는 “역사적 층위 존중” 원칙을 따랐습니다. 즉, 고대·중세·근대의 건축 요소가 섞인 지금의 형태를 자연스럽게 유지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 방식은 세계유산적 보존 철학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주민 생활권 문제와 건물 훼손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와 유네스코, 지역 단체가 협력하면서 지속 가능한 방식의 관리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유적과 삶의 균형이 핵심입니다.

스플리트 여행자들을 위한 현지 팁
이미지 출처: Croatia National Tourist Office
스플리트를 여행하면서 궁전을 중심으로 동선을 잡는다면 여행의 질은 훨씬 높아집니다. 작은 팁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궁전 내부는 대부분 도보 구역이므로 편한 운동화 필수
- 방문은 아침 혹은 해질녘 추천, 사진과 분위기가 가장 아름다움
- 성수기에는 지하실과 성당 전망대가 매우 혼잡하므로 시간 분배 필요
- 골목 안 카페나 레스토랑은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을 선택하면 분위기를 더 잘 느낄 수 있음
- 리바 해안 산책로의 석양은 놓치기 어려운 명장면
-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은 길 찾기가 어렵지만, 헤맬수록 매력적인 장소가 계속 나오는 구조
스플리트 여행은 단순히 ‘유적 관람’이 아니라, 고대와 현대의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도시의 호흡을 그대로 느껴보길 권합니다.
결론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로마 황제의 사저였지만, 그 이후의 세월은 이 궁전을 도시로, 사람들의 삶터로 변모시켰습니다. 이 공간이 특별한 이유는 고대 건축의 가치뿐 아니라 도시의 성장 과정 전체가 한 공간 안에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스플리트는 이 궁전을 해체하지 않음으로써 고대와 중세, 근대, 현대를 하나의 생활권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드문 도시가 되었습니다. 여행자에게는 “살아 있는 유산”의 의미가 무엇인지 직접 체감하게 해주는 장소입니다.
궁전의 돌벽을 따라 걸으며, 황제의 은퇴 생활, 중세인들의 정착, 근대 도시 형성,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까지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이어져 있음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시간의 층위가 살아 숨 쉬는 도시, 이것이 스플리트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참고문헌
- 스플리트 고고학 자료집
- 크로아티아 문화유산 관리청 내부 연구 문헌
- 유럽 고대건축 보존 사례집
이미지 출처 목록 (5)
- 크로아티아 관광청(Croatia National Tourist Office)
- 스플리트 시립박물관(Split City Museum)
- 스플리트 고고학 박물관(Archaeological Museum Split)
- 스플리트 역사 기록보관소(Split Historical Archive)
- 크로아티아 문화유산청(Croatian Conservation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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